나의 애독시(630) : 개나리꽃 / 도종환


개나리1.jpg



나의 애독시(630)

 

 

개나리꽃 / 도종환

 

 

산속에서 제일 먼저 노랗게

봄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나

뒤뜰에서 맨 먼저 피어 노랗게 봄을 전하는

산수유나무 앞에 서 있으면

며칠 전부터 기다리던 손님을 마주한 것 같다

 

잎에서 나는 싸아한 생강 냄새에

상처받은 뼈마디가 가뿐해질 것 같고

햇볕 잘 들고 물 잘 빠지는 곳에서 환하게 웃는

산수유나무를 보면 그날은

근심도 불편함도 뒷전으로 밀어두게 된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개나리꽃에 마음이 더 간다

그늘진 곳과 햇볕 드는 곳을 가리지 않고

본래 살던 곳과 옮겨 심은 곳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깊은 산속이나 정원에서만 피는 것이 아니라

산동네든 공장 울타리든 먼지 많은 도심이든

구분하지 않고 바람과 티끌 속에서

그곳을 환하게 바꾸며 피기 때문이다.

 

검은 물이 흐르는 하천 둑에서도 피고

소음과 아우성 소리에도 귀 막지 않고 피고

세속이 눅눅한 땅이나 메마른 땅을

가리지 않고 피기 때문이다.

 

 

개나리가 눈부실 만큼 노랗게 피어나야 그때부터가 진짜 봄이지요. 그늘진 외진 곳까지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 봄이 와 있음을 말해줍니다. 개나리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봄꽃들에 비해 그리 각광받는 편은 못 되지요. 오염돼 냄새나는 하천가에도 피고, 시끄러운 공장의 담장 밑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 앞에 붙어 개나리인가요. 개백정, 개망나니처럼 천한 욕지거리의 대상 앞에 늘 애꿎은 자를 쓰는 게 우리네 언어습관이지만 개나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잘못은커녕 가지만 꺾어 꽂아 놓으면 어디에서든 질기게 피어나 주변을 환하게 만들어 놓는 봄의 전령인데 왜 나리앞에다 자를 붙였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노릇이네요.

 

봄꽃의 상징은 역시 개나리와 진달래이지요. 개나리와 진달래가 유독 정겨운 것은 화려하진 않지만 해맑은 빛으로 옹기종기 무리지어 피워낸 그 소박한 아름다움 때문일 겁니다. 어제는 빛나는 햇살 덕분에 강변의 와락 핀 개나리 무더기가 눈길을 끕니다. 그 옆으로 목련도 화사하게 벌어졌어요. 등고선이 그려지는 골마다 스멀스멀 진달래도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만화방창 봄의 절정을 맞았습니다. 황지우의 꽃피는, 삼천리금수강산처럼 모든 봄꽃들이 총망라하여 숨 가쁘게 핍니다. 요긴하게 꼭 피어야 할 곳에서 최선을 다해 펴서 형식적으로는 삼천리금수강산이 맞습니다. 그 가운데 미아리 점집 고갯길에 헤프게 핀 개나리와 수유리 묵은 동네 돌축대 아래로 길게 늘어진 개나리는 불안한 내 청춘의 허파가 노랗게 물들 때 함께 피었던 꽃이고, 사람 떠나고 지붕이 폭삭 내려앉은 성주군 선남면 오도리 초가 곁에 엉망진창으로 피어있던 꽃도 개나리였고, 내 나이 열다섯 즈음 대구 방천 뚝방에 도회로 줄행랑친 계집아이처럼 눈부시도록 수줍게 피었던 꽃도 노란 개나리였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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