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605) : 눈 오는 밤에 /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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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605)

 

 

눈 오는 밤에 / 김용호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

오늘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

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싸고,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이 시는 어느 눈 내리는 겨울밤, 눈을 밟고 가던 화자가, 누이와 함께 질화로에 밤을 구워 먹으며 할머니께 옛날 이야기를 졸라 대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는 내용으로, 향토적 서정성이 듬뿍 담긴 작품입니다.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질화로에 밤알이 토실토실 익어 가던어린 시절의 정겨움도 모두 사라져 버린 메마른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화자는 홀로 눈길을 걸으며 고독에 젖다가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떠올리고는 흘러가 버린 그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질화로’ · ‘밤알’ · ‘콩기름 불’ · ‘실고추’ · ‘불씨’ · ‘잎담배’ · ‘초롱등의 순박하고 인정미 넘치는 시어를 사용하여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정겹게 만들고 있지요. 그러므로 이 시는 떠난 것은 모두 정겨운 것이고, 잃어버린 것은 모두 그리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는지도 모릅니다요. ()

 

이 시의 서정은 공간 묘사로부터 나옵니다. 이 시의 공간 묘사는 무엇보다 감각적이며 직접적입니다. ‘질화로’, ‘밤알’, ‘콩기름 불’, ‘실고추불씨’, 그리고 잎담배라는 소재는 촉각, 후각 등의 원초적 감각을 드러냅니다. 따스함, 온기를 중심으로 하는 촉각은 질화로의 온기와 더불어 나를 쓰다듬어 주는 할머니라는 모성적 존재와 관련됩니다. 또한 밤알 익는 냄새’, ‘실고추’, ‘잎담배’, ‘구수한이라는 시어들은 후각으로, 원초적 감각들을 일깨우며, 유년의 한 장소로 독자를 인도합니다. 이러한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감각 사용은 온전히 기억 장소를 되살리고 생생하게 고향의 원형을 재현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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