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88) : 이 밥통아 / 윤성학


밥통1.jpg



나의 애독시(588)

 

 

이 밥통아 / 윤성학

 

 

사랑이 밥통과 같다는 걸

누가 알았겠는가

 

나의 부엌에서

가장 어리석고 아둔한 음운을 가진 부속

모서리 없는 몸을 가졌다는 걸

일찍이 알지 못했네

 

오래 집을 비웠다가

돌아왔을 때

 

속이 비쩍 다 마르도록

전원을 끄지 않고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던

너의 이름을 부른다

 

 

이 시를 찬찬히 읽어보면 왠지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오래도록 전원을 끄지 않고 기다려주는 이가 나에겐 누구일까요? 난 어떤 이에게, 무엇을 위해 전원을 끄지 않고 기다려주는 밥통과 같은 존재가 되려 하는가요. 새로 지은 밥을 푸기 위해 밥통 뚜껑을 열었을 때 퍼져 나오는 김과 더불어 따스한 푸근함을 주는 밥통이라는 이름의 그릇. 기다리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세상에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기다리는 밥통이 되어주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애정을 따끈하게 데워주는 전원을 끄지 말고 사는 모서리 없는 몸통을 가진 밥통으로 살면 참 좋은 일이 아니겠는지요. ()

 

우리는 누군가가 조금 모자란 것 같다거나, 우리는 누군가가 조금 바보스러운 것 같다거나 하면, "이 밥통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랑은 밥통과 같습니다. 그저 모자란 듯, 그저 바보스러운 듯, 그렇게 오직 사랑만을 생각하고, 그렇게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살고,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만 바라보면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랑은 밥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바보스럽습니다. 내 사랑이 어리석고 아둔한 음운을 가진 부속이란 것을, ‘둔탁한 발성모서리 없는 몸을 가진 밥통이란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밥통, 밥통, 밥통이라고 발음을 해보니까 진짜 둔탁하긴 합니다. 전기밥통을 여닫을 때 그 소리도 사실 둔탁하긴 합니다. 그렇다 해도 그럼에도 밥통이 뭡니까요? 하지만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집안의 한기(寒氣) 속에서도 밥통은, 돌아온 내게 내어줄 온기를 제 안에 품고 있다가 주는 존재이지요. 당신의 사랑은 어떠합니까요? 혹시 지금 당신도 너무 오래 당신의 사랑을 비워둔 것은 아닌가요? 혹여 당신의 사랑도 속이 비쩍 다 마르도록’ ‘전원을 끄지 않고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진 않은가요? 당신에겐 이 존재는 누구입니까요? 이 밥통들아, 내 말을 알아듣고 있는 겁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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