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80) : 산 / 김광섭


산.jpg




나의 애독시(580)

 

 

/ 김광섭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 등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속에서도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대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 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高山)도 되고 명산(名山)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내고 산다.

 

 

산의 여러 모습을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지요. 산은 낮이면 그림자를 드리우다가 밤이면 거두어 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산의 양지바른 쪽에 무덤을 만들고 높은 곳에는 사당(祠堂)을 지으며, 촌락을 만들면서 점차 산기슭을 점령해 갑니다. 시인이 보기에 산은 사람보다 훨씬 거대하면서도, 사람에게 친근한 존재입니다. 산은 모든 것을 품 안에서 키우며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아울러 봉우리를 만들고 계곡을 이루며 충실한 자기 조화를 이루어 가는 존재이며, 한 기슭에 두 계절을 품고 살 만큼 크고 포용력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준엄한 자세로 사람을 다스립니다. 그래서 한 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 고산도 되고 명산도 된다.’라고 하여 세상을 평온하게 관조하는 것만으로는 고산명산도 될 수 없으며, 진솔하게 삶에 부대껴 보아야만 산이건 사람이건 큰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읽고 나면 삶의 깊은 연륜을 느낌과 동시에 삶의 자세를 새삼 가다듬고 산 아래서 산과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발견하는 것도 이 시가 주는 매력일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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