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70) : 빗방울, 빗방울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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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570)

 

 

빗방울, 빗방울 / 나희덕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사선이다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이토록 경쾌하게 보여주는 유리창

 

어긋남이 멈추는 순간부터 비는

수직으로 흘러내린다

사선을 삼키면서

굵어지고 무거워지는 빗물

흘러내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으면

빗물은 창틀에 고여 출렁거린다

출렁거리는 수평선

가끔은 엎질러지기도 하면서

 

빗물, 다시 사선이다

어둠이 그걸 받아 삼킨다

 

순간 사선 위에 깃드는

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

 

뛰어내리는 것들의 비애가 사선을 만든다

 

 

유리창 밖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내리는 빗줄기를 보고 놀라운 통찰력으로 놀라운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이 시를 보면 드네요. 빗줄기는 버스가 달려야 경쾌한 사선(斜線)을 그을 겁니다. 버스가 멈추면 그 경쾌함이 사라지는 건 당연하지요. 잣대를 대고 그린 수직과 수평에 의해 세상은 규격화되어 딱딱해지는 것처럼, 정해진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따돌림을 받거나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법과 규율과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자유를 구속하려드는 세태에 대해 이 시는 어긋남의 아름다움을 나직하게 전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지요. 우린 계속 이 시인이 탄 버스를 타고 달려야 좋은 건가요 아니면 도중하차해야 좋은 건가요? 뛰어내리는 것들의 비애가 사선을 만드는 걸까요, 아니면 사선을 긋는 모든 것들은 비애를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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