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50) : 월훈(月暈) / 박용래


달무리1.jpg




나의 애독시(550)

 

월훈(月暈) / 박용래


 

첩첩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랫둑,

그 너머 강기슭에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 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 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서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 월훈(月暈) : 달무리

* 허방다리 : 함정으로 판 구덩이

 

월훈은 달무리라는 뜻으로 깊은 산속 외딴 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노인의 외롭고 허전한 삶을 절실하게 묘사한 훌륭한 서정시이지요. 경어체의 사용과 명사 종결 어구를 삽입하여 정감의 깊이를 더해 주고 토속어의 사용으로 향토적 서정을 한층 더 높였습니다. 쉼표와 의태어를 적절히 사용하여 시적 효과를 상승시켰고 첩첩산중에서 방 안으로 이동하는 시상 전개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겨울의 외딴 마을 풍경과 노인의 고독과 그리움을 애상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지요.

 

깊은 산 속 외딴 집에 홀로 살고 있는 노인의 외로움과 허전함이 절실하게 묘사된 뛰어난 서정시입니다. 강가의 오지 같은 마을 안에서도 후미진 곳에 낡은 집 한 채 있습니다. 이곳에 노인은 밤늦도록 새끼도 꼬고 해진 그물도 다시 엮으며 일을 하다 잠이 듭니다. 설핏 든 잠이 깨어버린 노인은 시장기가 느껴져 무랑 고구마를 깎아 먹습니다. 그러다 후루룩 후루룩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조금씩 풀려 내리는 짚단 소리 같기도 하고, 처마 밑에서 날갯짓하는 이름 모를 새 소리 같기도 합니다. 노인은 숨죽여 그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새들의 온기를 생각하며 빙그레 미소 짓습니다. 그러다 다시 잠이 듭니다. 노인도 만물도 깊은 잠에 들어 적막한 겨울밤, 귀뚜라미 소리는 더욱더 크게 들립니다. 하늘에는 둥근 달이 떠 있고 달무리가 은은합니다. 내일이면 큰 눈이 올 듯합니다. 상상 속에서나 그릴 수 있는 풍경이 되었습니다만 이런 모습을 그릴 수 있는 마음 한구석을 가지고 있다는 마음이 바로 아름다움이 아니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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