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15)

♬ 가을의 시 / 최동호

야윈 손으로 가을의 시를

씁니다. 살갗을 스치는 밝은 바람이

하늘을 푸르게 하고

가로수 사이로

물든 나뭇잎이 색색으로 날려갑니다.

여름 빗물에 젖던

작은 새들도 가을집을 찾아나섭니다.

지금 떠나지 못하는 자는

끝내 떠날 수 없어

집을 찾으며 기도하고 지냅니다.

앙상한 새들의 집이

잎진 나뭇가지를 지킵니다.

맑은 눈물이 땅을 적시고

가을 속으로 걸어가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소리내어 부를 수 없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립니다.

밤이 늦어 읽던 책장 위에도

서리가 내립니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등 뒤에서 빛나는 이슬을 털며

누군가를 찾아 안개 속을 걸어갑니다.

◑ 이 시는 삶의 공허감을 느끼는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지요. 어쩌면 그것은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자가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고백인지도 모릅니다. 색색으로 떨어지는 나뭇잎, 가을집을 찾는 작은 새들, 등 뒤에서 빛나는 이슬 털며 누군가를 찾아 나선 고독한 사람, 모두가 지금 사람을 허전하게 만드는 모습들입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삶 또한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태양의 광휘(光輝)에 도취되었던 인간들이, 가을의 결실 또한 자기네를 위한 것이라고 으스댔던 인간들이 텅 빈 들판을 바라보면 벌거벗은 스스로의 삶을 보게 되는 가을입니다. 쓸쓸하지 않으면 11월이 아니라고 하는 말이 떠오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