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467)

♬ 사람에 취하다 / 서춘기

술에 취하면 하루 가고

꽃에 취하면 열흘 가고

멋에 취하면 한철 간다는데

난에 취하면 일 년 가고

글에 취하면 삼 년 가고

산에 취하면 십 년 간다는데

술도 꽃도 멋도 아니며

난도 글도 산도 아닌

난생처음 사람에 취했으니

어쩔거나

한번 취하면 평생 깨어나지 못할

사랑에 취했으니

어쩔거나

◑ 취하면 하루가 간다는 술에도, 취하면 열흘은 간다는 꽃에도, 취하면 한철 간다고 하는 멋에도 취해본 듯한데, 취하면 일 년이 간다는 난과는 거리가 멀어 아직 취한 사이가 되어 본 적이 없으며, 취하면 삼 년 간다는 책과 취하면 십 년 간다는 산은 취하면 일평생 갈 수도 있다고 정정해야 할 것 같은데, 사람에 취하면 어떻게 된다고요? 평생 깨어나지 못할 그 사람과의 사랑에 취하면 어떻게 된다고요? 이를 ‘어쩔거나’ 연발하면서 마음 들떠 얼이 쑥 빠진 상태로 시작해서 곡진(曲盡)한 마음으로 변해가지만, 일생 동안 가는 거 정말 맞는겨. 내 속 생각을 털어놓으라고 한다면 ‘한번 취하면 평생 깨어나지 못할 사랑’이라고 했는데 그건 과(過)한 표현인 것이여. 사랑은 세월과 함께 시나브로 사라지는 법인겨. 아니면 그만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