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나의 애독시(1183) : 매화 / 문인수

매화7.jpg



매화 / 문인수

 


어느 처마 낮은 대폿집에 들고 싶다.

따순, 분통같은 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지분냄새 자욱하여 불콰히 취기가 오른다면

육자배기로, 흘러간 유행가로 질펀 흘러갔으면 좋겠다.

젓가락 장단으로 아, 뚝뚝 꺾어낸 억수장대비의 북채로

동백 동백 같은, 늙은 작부의 상처 또한 붉게 씹으리.

다시 한 사발, 여자의 과거사를 가득 부어 마시면

지리산, 악산 산 거칠수록 더 여러 굽이 굽이굽이 풀려서

그러나 물이 불어 시퍼렇게 자꾸 깊어가는 섬진강.

저 긴 긴 목울대 치받치며 끄윽 끅 꺾이며 흘러가는 거

보라, 逆鱗(역린) 떨며 떨리며 대숲은 섧고

또 섧다 난분분난분분 매화 뿌린다.

 


어느 봄날 매화가 난분분하게 휘날리는 어귀에 시인은 서 있겠지요. 난만한 매화가 무척 아름답다고 느꼈을 겁니다. 아니 그런데 그의 미감(美感)은 봄날의 매화와는 어처구니없게도 싸구려 분 냄새가 자욱한 처마 낮은 대폿집으로 달려갑니다그려. 여기에 사내의 좌절과 호기가 애매하게 감춰져서 간신히 부릴 수 있는 호사를 꿈꿔봅니다. 아마 시인은 마악 피는 매화를 보지 못하고 때늦은 매화 할마시를 만나고 있는 겁니다. 낮은 처마 / 따순 / 분통 같은 방 / 지분냄새 /취기. 흐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가득한 무엇이 느껴지지요. 따악 에로물이 나올, 이 분위기에서 늙은 작부의 상처처럼, 강도 산이 거친 악산일수록 더 여러 굽이 풀리고 푸르게 길어진다는 믿음에 도달합니다. 이 믿음에서 역린(逆鱗)조차 거스를 수 있는 시인의 꼿꼿한 결기가 느껴집니다. 물론 그 결기 뒤에는 누추한 인생에 대한 깊은 옹호가 도사리고 있겠지만요. 허나 장대비에 산도, 강도, 늙은 작부의 상처도 풀려서 흐릅니다요. ()

 

* 역린(逆鱗) : 물고기, 특히 잉어 같은 물고기들에겐 무수한 비늘이 갑옷처럼 제 몸을 잘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늘은 물의 마찰을 최소한으로 줄여 헤엄을 잘 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고기들의 그 무수한 비늘 중엔 더러 다른 비늘과는 달리 역방향으로 나있는 것도 섞여있다고 합니다.

역린, 그러니까 그것은 혹독한 자기 운명을 거스르고 싶은 인간의 선천적 욕망이거나 일평생 씻지 못할 어떤 고질적 상처(흉터) 같은 것이 아닐까요. 당신의 생애, 그 깊은 마음속에도 거꾸로 선 역린이 틀어박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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