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수필(666) : 종달새의 노랫소리를 들어라 / 장석주
- 서건석
- 2021.05.12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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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수필(666) : 종달새의 노랫소리를 들어라 / 장석주
♬ 버드나무 가지에 물이 오르고 가지마다 매달린 잎들은 연녹색이다. 호수의 넘실대는 물을 푸르고, 영산홍은 붉다. 공중에는 종달새가 높이 떴다. 어느 맑고 따스한 봄날이다. 봄날의 평화를 완성하는 것은 바로 종달새의 청아한 울음소리다. 공중에 제 맑은 울음소리를 뿌리는 종달새는 그 울음소리로써 생명의 약동을 노래한다. 종달새의 울음소리는 이 세계가 죽은 것들, 바위나 꺾여 죽은 나뭇가지, 고압선 철주나 콘크리트 건축물들, 이런 부동하는 딱딱한 사물들의 세계가 아니라 뛰고 날며 움직이는 생명들의 세계라는 걸 노래한다. 종달새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가 말랑말랑한 생명의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 찬 우주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종달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시인은 ‘반짝이는 울음의 의상(衣裳)을 보아라.’(문태준, 종다리)라고 적는다. 시인은 무미의 초연함 속에서 시가 번쩍, 나타나는 찰나를 붙잡는다! 종달새의 울음소리는 어떤 형이상학적 암시도 주지 않는다. 세계의 찰나, 생명의 기척만을 드러낸다. 아무런 심연도 갖지 않은 찰나의 반짝임으로써 영원성의 덧없음을 암시할 따름이다. 귓바퀴에 편종(編鐘)처럼 맑게 울리는 종달새의 울음을 울음의 반짝이는 의상으로, 즉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바꿔 내는 이 능력이 바로 시인의 울트라 상상력이다. 이 한 구절은 100권의 시집에 실린 1,000편의 시가 실어오는 의미의 비중과 맞먹는다.
시골에 살다 보니, 세상에 새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새감 깨닫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뭇새들이 집 안팎으로 날아든다. 동고비, 곤줄박이, 붉은머리오목눈이, 쇠박새, 노랑텃멧새, 되새, 노랑할미새, 방울새, 꾀꼬리, 뻐꾹새, 쑥국새, 딱따구리, 멧비둘기, 쇠찌르레기, 물까치……. 새들의 살림 규모야 알 수 없지만, 내가 본 바에 따르면, 새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는데, 잘 먹고 잘 산다. 신기한 일이다. 새들은 자린고비처럼 절약하는 알뜰한 살림꾼들이고, 사랑스런 난봉꾼이다!
한편으로 새들은 자연의 금욕주의자들이다. 새들은 적게 먹고 적게 배설한다. 자연에서 낭비란 범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부류다. 새들은 날기 위해서 제 뼛속까지 비운다. ‘벌집은 최소한의 밀랍으로 그것을 가장 튼튼하게 받칠 수 있는 각도로 만들어져 있다. 새의 뼈나 깃은 최소한의 체중으로 가장 큰 힘을 날개에 실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놀랍지 않은가? 자연은 낭비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새들은 제 욕망을 채우느라 삶을 잃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는다. 새들은 당장에 없는 미래의 근심과 불행 때문에 노래를 쉬는 법이 없다.
적게 먹고 적게 배설하는 새들이 불행하다는 증거는 없다. 제 뼛속까지 비웠다고 새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도 없다. 새들은 잘 먹고 잘 산다.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할 때, 탐욕을 버리지 못할 때 사람은 불행해진다. 그 증거는 수백 개도 더 넘는다. 꼭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물건들을 소유하고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들은 잉여의 물건들에 속박 당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최소한도의 소유에 만족하며 사는 새들을 질투한다. 질투에 눈이 멀어 천진난만한 존재들의 명성에 공연히 흠집을 내보는 것이다. 사소한 것들을 빌미 삼아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건다.새, 어떤 규율도 따르지 않는 무리.
새, 허공의 영재(英才)들.
새, 깃털 붙인 질항아리.
새, 작고 가벼운 혈액 보관함.
새, 고양이와 바람 사이의 사생아.
새, 공중을 오가는 작은 범선.
새, 지구의 중력장을 망가뜨린 난봉꾼.
새. 떠돌이 풍각쟁이.
새, 살찐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가벼운 육체.
새, 뼛속까지 비운 유목민들.
새, 똥오줌 아무 데나 싸갈기는 후레자식.
새, 국민건강의료보험 미불입자. (졸시, <새>)
새를 두고 질투에 눈이 멀어 내가 늘어놓은 트집들이다. 새는 허공의 영재들이지만 규율을 잘 따르지 않는다. 새들은 난봉꾼이자 풍각쟁이들이다. 새들은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 미불입자들이다. 새들은 최저생계비로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있는 상상의 삶을 갈망하지 마라.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의 일들에 대한 근심을 품는 어리석음에도 빠지지 마라. 자연의 낙천주의자들인 새들을 보고 깨닫느니, 돈이 적을수록 골칫거리도 적고, 바라는 것이 적을수록 불행의 부피도 줄어든다. 아빌라의 성 데레사는 말한다. ‘가진 것이 가장 적었을 때 걱정거리도 가장 없었다. 감히 말하노니, 부족할 때보다는 풍족했을 때 더 괴로움이 많았던 것을 신은 알고 계신다.’ 적게 가지면 괴로움도 작고, 바라는 것이 작으면 불안과 두려움도 준다. 많이 가지면 괴로움도 덩달아 커진다. 많은 것은 작은 것이요, 작은 것은 크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장석주), 문학세계사(2016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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