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오늘의 수필(663) : 흙을 만지며 / 김영중
- 서건석
- 2021.04.17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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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수필(663) : 흙을 만지며 / 김영중
♬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사계는 놀라운 경물(景物)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 육체의 눈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영혼의 세계에까지도 깊이 작용한다.
계절이 바뀔 적마다 어떤 기대로 가슴이 부풀고 마음이 흔들린다. 이것은 어쩌면 내가 파파 할머니가 되어서까지도 계속될 일인지 모른다. 사람은 아무리 그 몸이 노쇠하여도 마음은 항상 홍안이라고 하지 않던가, 다시 돌아온 생명의 봄날은 생명이 소생하듯 우리들 고단한 삶에도 빛과 신명이 넘치게 한다.
올해도 봄은 우리 집 좁은 마당 안에 가득 들어섰다. 꽃샘바람이 이는 주말의 봄날, 수필교실의 Y 선생이 주어 받아두었던 예쁜 사각봉투 안에 들어 있는 씨앗과 꽃씨를 꺼내서 마당의 큰 화분들을 찾아 심는다.
장난감처럼 생긴 꽃삽으로 흙을 파헤치며 덩어리진 갈색 흙덩이를 손으로 한 움큼씩 쥐어 부서뜨리면 흙은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떡가루처럼 곱게 내려앉는다. 그것을 또 손으로 고루 핀 다음, 씨앗을 심고 꽃씨를 뿌리는 마음은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안정감과 휴식을 안겨 준다.
하느님이 흙을 빚어 생명을 불어넣고 사람은 만드셨다고 창세기에 말씀하셨으니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에게 흙은 모태와 같은 것이다.
콘크리트 문명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좀처럼 흙을 밟기가 어렵고 더욱이 손으로 흙을 만져볼 기회란 한결 더 없어 자연히 흙냄새를 외면하고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사람의 머리로 스며 들어온 천기가 땅으로 흘러갈 길이 없어서 오늘날 많은 문화병들이 생기는 원인이라고들 말한다. 나는 온종일 흙을 만지며 흙으로 해서 행복했던 일들과 슬펐던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어느 해 여행지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 흙의 예술가들이 모인 촌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반죽된 누런 흙덩어리를 내 두 손으로 직접 주무르며 촉촉하고도 매끄러운 흙의 신비로운 감촉에 매료되어 도예가들처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내는 창조의 기쁨을 맛보았었다. 그러나 흙은 사람에게 기쁨이나 위안만은 주지 않는다.
5년 전 4월은 우리 가족들에게는 아프고 잔인한 봄이기도 했다. 오랜 세월 병상에서 고통 받으시던 가족 한 사람이 흙속에 묻히게 된 것이다.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흙속에서도 훈기가 서리는 아름다운 4월에 그는 죽어서 60여 성상의 아쉬운 한을 품은 채 그가 태어난 흙의 품안에 안겼다. 그날, 그의 생명이 떠나고 육체가 담긴 나무관이 십자가와 꽃으로 덮이어 땅속에 눕혀 졌을 때 사랑하는 육친들은 관례를 따라 차례로 한 부삽씩 흙을 떠 그의 관 위에 뿌렸다. 흙으로 돌아간 그의 몸을 흙으로 덮어 준 것이다. 그때의 흙은 슬픔과 아픔을 주는 흙이었다. 그 이래로, 흙은 나에게 또 하나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 있다.
길러 주는 흙, 품어 주는 흙, 기쁨과 휴식을 주는 흙, 슬픔과 아픔을 주는 흙, 그래서 흙은 생물을 키워줄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자라게도 해준다.어느 시인의 연작시에서 읽은 “도시의 사람들은 흙을 모른다. 다만 땅만 알 뿐이다”라는 한 구절이 있다. 비록 평범한 시구 같지만 현대문명 속에 사는 도시인들의 탐욕에 찌든 각박한 인심세태를 풍자한 말이라 하겠다. 수백만 평의 땅을 혼자서 소유하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느낀다. 어리석은 인간의 욕망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 사람이 죽어서 차지하는 땅은 결국 한 평밖에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땅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 차지할 땅도 한 평이면 족하다. 어리석은 인간의 욕망은 헛된 수고만 남기게 된다. 나 혼자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무지한 욕망 때문에 저지른 부끄러움을 언제가 한 뼘의 흙속으로 돌아갈 때 깨달을 수 있으리라.
세상에는 큰손이라는 말이 있다. 흙이야말로 신의 큰손이라고 생각한다. 흙은 생명이요, 축복이기 때문이다. 도시생활 속에서 잠시나마 흙을 생각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때는 씨앗을 심고 꽃씨를 뿌리는 계절이다. 흙을 만지는 동안, 잡념도 사라지니 정신위생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이 모든 것이 흙을 만지는 풍성한 기쁨이 아니겠는가? 흙을 만지니 항상 흙을 만지며 사는 사람들이 그립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 창작을 해내는 흙의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부지런히 묵묵히 일하고 있다. 흙을 만지는 사람들의 마음은 소박하고 욕심 없고 따뜻하다. 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배우며,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봄날이다.* 경물(景物) :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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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바뀜을 실감하는 이야기입니다.
1년 4계절이 어김없이 오고 가는 나라에 산다는 복,
사우디 같이 무덥기만 한 나라에 살다오니 더욱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