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오늘의 수필(645) : 가을, 절정 / 한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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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수필(645) : 가을, 절정 / 한상경

 


아침고요의 가을은 축령산 꼭대기에서부터 달음질쳐 내려온다. 9월말, 축령산 정상을 울긋불긋 물들이기 시작하던 물감은 한지에 물이 스며들 듯 서서히 아래로 스며들어 아침고요의 단풍나무, 은행나무에도 붉은 물, 노란 물을 쏟아놓는다. 곧이어 지난 봄 노란 얼굴로 반갑게 인사하던 풍년화. 히어리, 생강나무 잎사귀들이 황금빛으로 물들면 아침고요의 가을은 절정에 이른다.

 
  단풍나무에는 봄에도 붉은 잎사귀를 볼 수 있고 가을에 다시 한 번 더 진하게 타오르는 홍단풍이 있는가 하면 본래 우리나라 산야에 자생하는 산단풍이 있다. 산단풍은 홍단풍과 달리 봄에는 붉게 물들지 않는다. 봄과 여름에는 다른 나뭇잎들과 같이 녹색을 띠다가 가을이 되어서야 붉고 진하게 물드는 산단풍들은 늦가을, 조국의 가을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주인공들이다.


  축령산에 서리가 내리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아침고요에는 또다시 장관이 연출된다. 정원 여기저기의 은행나무들이 노란 잎사귀들을 일제히 땅으로 쏟아내는 것이다. 여기에 드문드문 단풍나무 잎사귀라도 얹히면 마치 진노랑의 카펫 뒤에 붉은 수를 놓은 듯, 이곳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환상의 낙원으로 변모한다.


  자연이 선사하는 축제 앞에서 사람들을 말을 잃는다. 앙상한 나뭇가지 아래로 꿈의 길을 걷는 동안 수목원 여기저기에서는 낙엽 태우는 냄새가 난다. 사람도 식물도 지난 계절을 반추하며 숙연해지는 순간이다.


  이제 모든 것이 떠난 자리에서 마지막 가을을 노래하는 것은 아침 광장 주변의 황금빛 낙엽송이다. 마치 수목원을 황금빛 띠로 에워싸는 듯 외로이 서 있던 낙엽송들이 이별을 고할 즈음이면, 아침고요의 가을은 막을 내린다.


  누가 말했던가?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아름답다고.


  많은 것들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가 사라져갔고, 그들과의 만남은 우리들 가슴속에 아름다움으로 남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을이 주는 아름다움은 처연함과 더불어 장엄미를 느끼게 한다. 모든 것을 불태우고 사라져가는 이의 쓸쓸하고도 장엄한 뒷모습…….


  이 가을이 나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가을 풍경처럼 아름다운 사람을 가져본 적이 있느냐?’. 아니면 당신은 가을 풍경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 <아침고요 산책길(한상경), 샘터(2003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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