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오늘의 수필(632) : 시간 없을 때 시간 있고 바쁠 때 더 많은 일을 한다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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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수필(632) : 시간 없을 때 시간 있고 바쁠 때 더 많은 일을 한다 정호승

 


언젠가 제가 너무 바쁘다고 하자 시간 없을 때 시간 있고, 바쁠 때 더 많은 일을 한다.’고 누가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제 시작노트 맨 앞장에 그 말을 적어놓고 자꾸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문득 알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을 때는 스스로 시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 많아 정신없이 바쁠 때도 그 일을 해내기 위해 더 열심히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시간이 많을 때에 오히려 더 시간이 없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마냥 뜸들이고 늦장을 부리다가 그만 시간에 쫓기게 되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저는 청탁받은 원고 마감일이 많이 남았을 때 오히려 마감일을 지키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약속장소에 가장 늦게 나타나는 사람이 약속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도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시간이 많다는 것은 자칫 게으름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시간이 많아 게으름을 부릴 때 오히려 시간이 더 없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많다고 해서 그 시간이 다 유용하게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시간이 게으름을 위하여 쓰이면 시간이 없는 경우보다 더 못합니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거나 바빠 죽겠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합니다. 아마 일상에서 가장 자주 쓰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이 말일 것입니다. 저도 툭하면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말이 입 밖에 나오려고 하면 꿀꺽 삼켜버립니다. 시간은 변함없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데 공연히 저 혼자 시간이 있다 없다 말하는 것입니다. 시간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제가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산속에 있는 암자에서 잠들었다가 이른 새벽에 스님이 치는 운판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하루가 너무도 길었습니다. 하루가 그렇게 길고 많은 시간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실은 똑같은 하루라는 시간이었을 뿐인데도 그날은 마치 시간의 부자가 된 것 같았습니다.

 

시간은 이렇게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시간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시간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창조되어야만 비로소 자기만의 시간이 됩니다.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에 보면, 시간의 주재자인 호라 박사는 모모에게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시간을 지니고 있으며, 시간은 참된 소유자를 떠나면 죽은 시간이 되고 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은 늘 참된 소유자를 만나려고 합니다. 시간의 참된 소유자는 시간을 잘 관리하고 활용합니다.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을 구분함으로써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습니다.

 

제주도의 귤도 남쪽에 있는 서귀포 귤이 더 당도가 높고, 서귀포 중에서도 남원 지역의 귤이 더 당도가 높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귤나무라도 윗가지에 달린 귤이 아래가지에 달린 귤보다 더 당도가 높고 맛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햇볕을 쬘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귤 하나도 햇볕을 자기 것으로 만든 노력의 시간이 어느 정도였느냐에 따라 당도와 맛이 달라지는데, 하물며 우리 인간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프란치스꼬회 박재홍 수사님은 시간은 시간으로 존재하지 않고 노력의 결실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나무를 심었다면 나이테 안에 존재하고, 내가 사랑을 심었다면 따뜻한 그대 마음 안에서 시련을 극복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내가 마음을 온유하고 갈고 닦았다면 온화한 언행 안에 존재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매일 간절히 기도했다면 좀 더 나은 세상 안에 존재하고, 열심히 운동을 했다면 건강 안에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허송세월하지 말고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라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도꼭지를 제대로 잠그지 않고 잠들어버림으로써 물을 낭비하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합니다. 시간은 낭비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모에서처럼 시간은 저축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소녀 모모는 시간을 저축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미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저축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늘이라는 지금 이 시간을 충실히 사용하지 않으면 내일이라는 시간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내일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일을 먼저 생각하고 오늘 이 시간을 저축하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시대는 시간을 절약하고 저축하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 세탁기, 휴대전화, 자동차, 비행기 등은 결국 시간을 줄여준다는 점으로 그 이기의 장점을 축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간을 내일을 위하여 저축할 게 아니라 오늘을 위하여 열심히 써야 합니다. 육체와 물질을 위해 쓰기보다 영혼과 사랑을 위해 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시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고, 시간을 창조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나의 것인 것 같지만 실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시간은 신의 것이며, 신으로부터 잠시 빌려 쓰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 빌린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신에게 낱낱이 보고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을 때 시간을 낭비하거나 소중하게 쓰지 않았다면 그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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